운화와 근대 - 최한기 사상에 대한 음미
저 : 박희병 ㅣ 출판사 : 돌베개 ㅣ 발행일 : 2003년 09월05일
저자 박희병
출판사 돌베개
ISBN 9788971991657(8971991658)
쪽수 240쪽
크기 A5
인상깊은 문구
- 불승의 말 가운데 "네 콧구멍으로 숨을 쉬라!"는 말이 있다.
- 어떻게 하면 '해석'이, 왜곡이 아닌 채로 '창조적 전망'으로 사뿐히 넘어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 그렇기는 하지만 여기서 생각이 멈추어 버린다면 곤란하다. 오히려 여기서부터 생각다운 생각이 시작되어야 한다.
- 가령 오늘날 학인 가운데 서양에 정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구미에서 공부하고 돌아오건만, 한편 우리 자신에 정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것인가?
....
- 이는 사유의 성급함이요 무모함이라고 해야 하리라.
- 17세기 초에 조선으로부터 주자학을 수용한 야마자키 안사이...... 조선의 학문 풍토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발언이다.
기존의 연구 방법론을 전복하다
최한기는 조선의 전통적 학문 방법론인 경학(經學: 유교 경전에 대한 연구)의 치학방법(治學方法)을 전복시킨 파격적인 사상가였다. 유교 사상은 성인(聖人)의 가르침, 성인이 제정한 예법을 따르는 것을 그 종지(宗旨)로 삼는다. 그런데 최한기는 성인의 가르침과 성인의 의의를 일단 승인하면서도 인간이 직접 받들고 따라야 할 최고의 것에 성인 대신 운화기(運化氣)를 위치지음으로써 성인을 상대화시켰다. 그것은 곧 경학이 상징하고 있는 문명의 테두리를 벗어나 새로운 문명을 구상하고 체계화해 갔음을 의미한다. 당대 조선에서 서양 사정에 가장 밝았던 최한기가 자신의 철학체계와 정치학 및 세계구상을 마련해 나가는 데 서양에 대한 각종 정보와 아이디어의 영향을 받았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최한기는 서양을 모본으로 설정하고 그에 맞추어 동아시아와 조선의 미래를 설계한 것은 아니다. 최한기의 문제설정은 기학(氣學)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통해 동서양을 융합하고 포괄하는 데 있었다. 기학의 체계 아래에서 최한기는 화이론(華夷論)적 세계관을 극복했으며, 국가간의 평화와 공존을 중시하여 '나'와 '타자'가 함께 번영하는 길을 사상적으로 모색하였다. 그 점에서도 최한기는 서구근대를 뒤쫓아야 할 전범으로 삼고 타민족에 대한 침략을 정당화한 일본의 대표적인 근대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나, '야만/문명'의 대립항에 따라 사회와 문화를 파악, 사회진화론을 내면화한 강유위와도 뚜렷이 구별된다. 1965년 고 박종홍(서울대 철학과 교수) 교수로부터 시작된 남한에서의 최한기 연구는 서구적 근대에 접근해 가는 한국의 자생적 근대화론을 최한기에게서 강박적으로 찾아내고자 했다. 이는 최한기 사상의 근대성 탐구라는 관점에서 이루어진 이후의 연구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근대주의적 해석틀을 가졌던 그간의 연구는 피상적'부조적(浮彫的)으로 최한기 사상의 근대적 양상을 확인하면서 결과적으로 최한기 사상의 어떤 면모를 과장하거나 확대해석하는 쪽으로 치닫게 되었다. 근대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으로 최한기 사상을 검토한 연구 업적이 극히 일부분(도올 김용옥의 『讀氣學說』과 임형택의 「개항기 유교지식인의 '근대' 대응논리」,『大東文化硏究』)인 점을 감안할 때 그간의 연구가 최한기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얼마나 어렵게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근대주의의 추인과 정당화'에서 이루어진 기존의 연구 방법론을 전복하고 그간 이루어진 최한기 연구의 오류를 바로잡고 있다. 최한기 사상에서 무리하게 근대성을 적출해 내기 위한 시도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관념론적 측면이 많은 최한기를 경험론자로 일방적으로 몰고 간 것(126쪽 참조), 개화사상과 최한기 사상을 동일시한 것(179쪽 참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중 대표적으로 저자는 최한기가 사민평등(四民平等) 사상을 이룩했으며 사민(四民)을 신분 개념이 아니라 직업 개념으로 이해했다는 주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118쪽 참조) '사람에게는 원래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정해진 분한(分限)이 없다. 그러니 조정에서는 오직 인품과 귀천으로 취사(取捨)해야 한다'라고 한 점에서 그가 인재등용에서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최한기 사상 내에서 국가를 운영하는 역할을 맡는 자들은 운화기에 통달한 사람, 즉 사신분(士身分)에 속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보자면 최한기는 사신분의 인물들을 위정자로 등용하는 방식에 있어 여러 가지 개혁안을 내놓았을 따름이지 사민의 평등을 전제한 것이거나 사민의 평등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최한기 사상의 문제점과 한계 검토
이 책은 최한기 사상을 크게 서양을 보는 눈, 세계주의, 자연과 인위, 평화주의, 학문의 통일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검토하면서 최한기 사상이 갖는 근대성의 면모와 동시에 그 결함 내지 한계까지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고루한 폐쇄성을 벗어나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세계의 추세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한 최한기의 서양에 대한 태도, 그리고 만국은 평등하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국제무역을 전면 긍정한 최한기의 세계주의는 많은 연구자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부분이다. 그러나 최한기의 서양에 대한 인식과 세계주의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저자는 최한기가 서양을 기술하는 태도에는 아편전쟁 이후 동아시아 사상가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심각한 위기의식이 감지되지 않으며, 최한기가 그린 조화롭고 분열이 없는 세계상은 서구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비판이 없는, 다분히 이상주의적이고 공상적인 세계구상이라고 평하고 있다. 최한기 사유의 이런 안이하고도 나이브한 점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저자는 일차적으로 대기운화(大氣運化), 통민운화(統民運化), 일신운화(一身運化)라는 세 가지 운화의 일통적 체계와 원리를 강조하는 기학의 논리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기학의 총론과 체계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자부, 그리고 자기정당화는 각론과 디테일에 대한 부실을 초래했고 최한기가 서양에 대해 현실적'비판적 사유를 제대로 펼쳐 나가지 못하게 한 원인이 된 것이다. 이밖에도 이상주의적 경향을 띤 조선 사상계의 영향, 서양에 대한 당대 조선의 오활함, 최한기가 조선의 기존 학문을 송두리째 부정한 점, '무형'에 대한 탐구를 닫아 버림으로써 사상의 본원에 대한 물음을 하지 않았다는 점 등이 또다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혜강 최한기의 대동사상과 평화주의-21세기의 새로운 사상적 모색
최한기는 끊임없이 세계의 대동(大同)에 대해 강조했다. 그러나 '대동'이라는 호혜적이고 평등한 관계로 표상되는 최한기의 세계상은 실제 구현된 근대에서 관철된 적은 없다. 그러나 저자는 역사적 맥락에서는 극히 비현실적이라고 평가될 수밖에 없는 사상내용이라 할지라도 오늘날의 관점에서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보며, 그런 의미에서 최한기의 대동사상과 평화주의에 주목하고 있다. 최한기의 자연관이나 이성 규정에서는 상(上)과 하(下), 안과 밖, 천(天)과 인(人), 자(自)와 타(他), 인(人)과 물(物)이 모두 '통'하며, 조화로운 관계를 연출한다. 그러므로 거기서는 침략이나 타자에 대한 억압이 도출되지 않는다. 이런 최한기의 자연관이나 이성 규정은 역사적 근대의 입장에서 본다면 약점이나 한계로 치부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역사적 근대를 넘어서고자 하는 입장, 가령 생태주의와 같은 견지에서 본다면 중요한 시사와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최한기가 꿈꾼 세계는 지배와 복종의 세계가 아니라 평화와 대동의 세계였다. 동아시아의 역사를 통틀어 아마도 최초로 자각적인 수준에서 제기된 것이 아닐까 여겨지는 최한기의 세계평화 사상은 현재적'미래적 의의를 갖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로운 서술, 형식의 파격을 보여준 새로운 학술서
최한기는 『추측록』(推測錄)이나 『인정』(人政)과 같은 저서에서 특정한 표제하에 쓴 하나하나의 글을 무수히 나열해 가는 저술방식을 애용하였다. 고전에 바탕을 둔 경학(經學)의 어휘를 사용하는 동아시아 중세의 글쓰기를 전복하고 또박또박 자신의 생각만을 적어 나간 이러한 글쓰기 방식은 동서고금을 통해서도 유례가 없는 아주 특이하고 예외적인 것이었다. 마치 수상록을 써 나가듯 특정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로운 필치의 단편적인 글에 담아 종횡무진 펼쳐 간 최한기의 사상을 음미하기 위해 저자는, 일반 학술서와는 달리 번쇄(煩풏)한 논증이나 인용을 피하고 103개의 소꼭지 속에 사유의 흐름을 자유롭게 기술하는 최한기식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최한기에 대한 전기적 사실, 최한기의 학문과 서구 자연과학의 관련, 최한기의 인식론 등 기왕에 논의된 사항들, 충분히 밝혀져 있는 사실이나 재론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는 주제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건너뛰는 방식을 택한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기존의 최한기 연구에서 제대로, 혹은 전혀, 다루지 않은 의제들, 즉 서양을 보는 눈의 문제, 주체성의 문제, 특수성과 보편성의 문제, 세계화 내지 세계주의의 문제, 근대와 근대극복(혹은 탈근대)의 문제, 리얼리즘과 아이디얼리즘의 문제, 유기체론과 기계론의 문제, 지배와 평화의 문제, 갈등과 대동(大同)의 문제, 자연과 문명의 문제, 실용주의와 인문적 가치 등 최한기 사상에 내재해 있으며,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물음들을 검토하고 있다.
문제와 방법
왜 최한기인가
기존 연구의 문제점
이 책의 접근법
....
다섯 가지 주제를 통한 최한기 사상의 음미
서양을 보는 눈
세계주의
자연과 인위 - 최한기의 정치학과 그 생태주의적 음미
....
논의의 심화와 확대
이욕의 긍정과 그 한계 - 사적 자율성의 문제
문예의 폄하
사민평등의 문제
.... 문제와 방법
왜 최한기인가
기존 연구의 문제점
이 책의 접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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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가지 주제를 통한 최한기 사상의 음미
서양을 보는 눈
세계주의
자연과 인위 - 최한기의 정치학과 그 생태주의적 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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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의 심화와 확대
이욕의 긍정과 그 한계 - 사적 자율성의 문제
문예의 폄하
사민평등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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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병 [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같은 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문학사, 사상사, 예술사에 두루 관심을 갖고 공부한다.
[한국전기소설의 미학](돌베개, 1997)으로 1998년 제3회 성산학술상을 수상했으며 [한국의 생태사상](돌베개, 1999)으로 제40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인문과학 부문 저작상을 수상하였다.
저서로 [한국전기소설의 미학], [한국의 생태사상], [운화와 근대], [연암을 읽는다], [유교와 한국문학의 장르], [저항과 아만], [연암과 선귤당의 대화], [나는 골목길 부처다-이언진 평전] 등이 있으며, [나의 아버지 박지원],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 [골목길 나의 집-이언진 시집] 등의 역서와 논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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