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이야기

인간에 대한 예의 지키며 덤덤하게 세련된 수컷..과묵한 열정, 단호한 감성

이카로스의 날개 2009. 1. 15. 23:57


A 돌쇠의 도는 땅에 떨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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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실 우리 연애 시장에서도 나름 창궐하였더랬다. 먼저 들이대는 데 있어 유불리를 따지지 아니하고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그녀에게 영원히 있사옴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모든 자존심을 그녀 몫으로 기꺼이 헌납한 채 오로지 관계 자체의 황홀함을 탐닉하는 데 제 모든 에너지를 집중한 그들, 마님을 경외한 나머지 주종관계로 복속됐던 마당쇠들과는 달리 아씨를 흠모하되 결코 관계 주체로서의 독립성을 놓지 않았던 근대적 연애자들, 틀림없이 존재하였으니 바로 돌쇠들이라. 서구에 기사 나부랭이가 있었다면 우리에겐 그렇게 돌쇠가 있었더랬다. 최근까지도.

그런데. 그녀 안위와 행복 위해 제 한 몸 초개와 같이 투척하던 연애 시장의 그 건아들이, 근자 들어 빛의 속도로 종적을 감추고 있다. 이제 뻐꾸기 시도 전에 도주로부터 확보하고 혹여 나만 손해 볼까 끊임없이 간을 보며 수시로 속도 조절 자행하는 밀당 수작까지, 온갖 잔기술 구사하는 수컷들이 갑자기, 사방에서, 동시다발로 출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수컷들 연애 간땡이의 대규모 축소 현상, 경제력과 피임술 그리고 여권 신장이 구성한 새로운 권력 환경에, 수컷들 스스로가 자신을 맞춰가는 적응이라 할 수도 있겠다. 성은 언제나 권력의 문제였으니까. 그 지형이 변하면 새로운 사회적 진화, 진행될밖에. 그러나 그 해석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해서 그 현상을 바람직하게까지 만드는 건 아니다.

적어도 나는 못 봐주겠다. 남자가 화장하고 성형하고 치마 입어도 괜찮건만, 이건 못 봐주겠다. 소통하고 연대하고 공감하는 여성성의 장점만큼이나 연애에 있어 남성성 고유한 미덕 존재하는 거다. 어설프게 변호했다간 마초로 몰려 뼈도 못 추릴까봐 먹물들마저 닥치고만 있더라만, 늠름하면서 인문학적으로 각성한 마초, 그거 가능한 거라고. 
   
 »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인간에 대한 예의 지키며 덤덤하게 세련된 수컷, 불가능한 게 아니라고. 과묵한 열정, 단호한 감성, 있는 거라고. 왜들 그렇게 자잘해졌나. 아, 쪽팔려, 씨바. 땅에 떨어진 돌쇠의 도를 되찾을, 네오 마초가 필요한 시대다.


PS - 정작 당신한테 할 말 깜빡했다. 간단하다. 연애, 그렇게 하는 거 아니다. 자존심, 그걸로 뭐하게. 전부 그녀 주시라. 자기연민 집어치우고 오로지 직선으로, 정면으로, 액면가로 들이대시라. 그들에게 복이 있나니, 여심은 결국 그들 것일지니. 연애에 임하는 마땅한 수컷의 자세에 그 이상이 없노라. 아멘.

 

- 김어준 딴지 종신 총수

 

 

※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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