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경향신문(5월 21일자) 박홍규 교수의 칼럼 ‘똥파리’를 읽고
[기고] 경향신문(5월 21일자) 박홍규 교수의 칼럼 ‘똥파리’를 읽고
(블로그 '조기숙의 마법에 걸린 나라' / 조기숙 / 2009-05-21)
평소 교수님을 존경하던 터라 요즘 잘 읽지 않던 경향신문에 실린 님의 칼럼을 읽게 되었습니다. 영화보다 현실이, 그리고 권력기관이 더 폭력적이라는 님의 주장이 구구절절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대통령은 범죄자’며 라는 대목에서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이 범죄로 실형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두 분 전임대통령은 어떤 범죄 혐의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물론 이 두 분이 다치지 않은 것은 정치보복이 없었던 지난 민주 정부 10년의 성과 덕분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연좌제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현행법의 저촉을 받지 않은 전임 대통령을 범죄자라니요. 아마 그러한 주장을 하게 된 데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근 사건이 한 몫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아직 검찰에서 혐의사실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것이 분명한 진실입니다. 가족의 돈거래가 불법인지조차 분명하지 않습니다. 물론 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존중해야 할 진보언론마저도 ‘이래도 모른다고 할 것’이냐며 마치 노 전 대통령이 가족의 돈 거래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소설을 쓰지만 그런 주장은 ‘모든 인간은 같다’라는 가정에 기초해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다릅니다. 거짓말을 태생적으로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신에 의해 목에 칼이 들어오는 경우에도 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에 대해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가까이에서 오래 지켜봐 그 사람의 성격을 가장 잘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마음대로 써 갈기는 기자들은 노 전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할만한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저는 지난 몇 년간 그분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또 리더들의 성격유형에 대해 오랫동안 깊이 있게 연구한 결과에 기초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에게 지금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검찰의 억지도 언론의 막장 보도도 아닐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알았다.’고 거짓말함으로써 가족들을 지켜주지 못한 가장으로서의 회환일 것입니다. 거짓말 한마디면 가족이 당할 봉변을 다 막을 수 있었을 텐데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성품 때문에 그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치욕스러울 것입니다. 역사를 두려워하는 대통령이었기에 거짓말로 잘못된 역사를 기록할 수 없다는 신념 때문에 더욱 괴로울 것입니다.
논두렁에서 농부와 막걸리 한 사발 마시는 것이, 재래시장에서 어려운 할머니 껴안고 목도리 하나 둘러 주는 것이 뭐 그리 힘든 일이라고 노 전 대통령은 한사코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의 현실적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정책을 가져가지 않는 한, 그것은 한낱 이미지 쇼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분의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그런 이미지가 서민의 마음을 위로니까 국민에 대한 대통령의 당연한 서비스라는 저의 지속적인 간언에도 불구하고 노 전 대통령은 하지 않았습니다. 결벽증에 가까울 만큼 정직하고 진솔했던 전직대통령에게 검찰과 언론이 얼마나 커다란 폭력을 휘둘렀는지 후대의 역사가들은 제대로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누구도, 그 누구에 대해서도 권력으로 지배하려고 해선 안 된다”라는 교수님의 주장을 가장 몸소 실천한 분이 저는 바로 노 전 대통령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사석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늘 권력의 폭력에 저항하며 당해왔다. 그래서 나는 권력이 있되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국가권력을 이용해 수구세력을 싹 쓸어버리지 못했다고 좌파들로부터 비난을 받으면서도, 권력이 두려워 숨을 죽이다 별것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수구세력들로부터 끊임없이 조롱과 무시를 당하면서도, 노전대통령은 어떤 부당한 권력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을 동원하는 정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국민들은 똑똑히 보았을 겁니다. 한국 정부가 권력기관을 동원하지 않고는 통치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바보스럽게 권력기관을 놓아버리고도 대한민국이 평화롭게 돌아간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경찰의 과잉진압에 희생당한 한 농민 시위대의 죽음 앞에서 대통령은 머리 숙여 사과했습니다.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입니다. 정도를 넘어서 행사되거나 남용될 경우에는 국민들에게 미치는 피해가 매우 치명적이고 심각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공권력의 책임은 일반 국민들의 책임과는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뤄야 하는 것입니다.”
교수님의 철학을 몸소 실천하신 노 전 대통령이 교수님의 눈에는 범죄자로 보이는지요. 법학자이신 교수님이 무죄추정의 원칙은 저버린다 해도, 수천억대의 비자금을 챙기고 수천 명을 학살한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전임 대통령들과 같은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는지요.
물론 인식은 교수님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글이나 말로 표현되는 순간, 그건 또 하나의 폭력이 됩니다. 아무리 과오가 많은 전임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그의 인권은 존중받아야 마땅합니다. 교수님이 문화 권력을 이용하여 전임대통령의 인격을 생매장한다면 그 폭력의 피해에 대한 보상은 어디에서 어떻게 받아야 하나요?
사람이 모두 다르듯, 정치인도 모두 다릅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불필요할 정도로 높은 정치 불신은 교수님을 비롯한 논평가와 언론의 무차별적 언어폭력의 결과는 아닐는지요.
교수님이 권력기관의 폭력을 경계하는 발언을 하셨기에 깊이 공감하며 질문을 드립니다.
[출처] 경향신문(5월 21일자) 박홍규 교수의 칼럼 ‘똥파리’를 읽고 (조기숙의 마법에 걸린 나라)
ⓒ 조기숙 /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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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이 글은 언론의 일반적 보도와 논평에 대한 문제제기의 차원에서 쓴 것이지 박교수님을 비판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글을 이메일로 박교수께 보냈고 다음과 같은 답신을 보내왔기에 박교수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나 비판은 삼가해주시길 바랍니다.
조기숙 선생님께
평소 존경하던 교수님이라
말씀하신 부분에 공감합니다.
대통령 중에도 범죄자가 있다고 해도 해야 하는데
표현에 문제가 있었군요.
죄송합니다.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43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