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여성들,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
조선의 여성들,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
박무영·김경미·조혜란
돌베개 2004년07월05일 신국판/352 쪽 ISBN 89-7199-188-7 03990
인상깊은문구
- 그러나 우리가 불러내고자 하는 것은 ‘위대한 여성들’이 아니다. ‘위대하다’는 수식어는 필연적으로 추상화와 일종의 폭력적인 위압감을 내포하게 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 뜰의 꽃 흐드러져도 보고 싶지 않고
음악 소리 쟁쟁 울려도 관심 없어
좋은 술, 어여쁜 자태엔 흥미 없으니
참으로 맛있는 건 책 속에 있다네
- 송덕봉
- 섬처럼 고독했던 시집의 별당에서 난설헌의 혼은 수직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 ...그러므로 원한이 쌓인 채 흩어지지 못하는 귀신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위로할 양이 아니라면, 산 자들은 죽은 자들의 목소리를 불러내지 말 일이다.
-오빠인 녹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제 나를 죽은 누이로 여기십시오”라고 할 정도로 비통한 심정을 가누지 못했던 것이다.
- ‘지극한 덕’ 지덕(至德)
- 이제야 알았노라 하늘과 땅이 커도
내 가슴속에 담을 수 있음을
- [호동서락기] 중에서
- 죽서는 호을 반아당이라고 했다. 반벙어리라는 뜻의 호.
- “나는 그런 사람과는 말을 아니 하노라.”
그것은 이날 새벽 죽어가는 남편을 살려보겠다고 아내 조씨가 칼로 손을 베어 남편의 입에 피를 흘려넣으려는 것을 보고, 아내가 자결하는 줄 알고 나서 한 말이었다.
- 당신도 역시 그렇겠지요.
- 그리운 미친년 간다
교보문고 2004 올해의 책
2004 인문사회과학도서 독후감대회 선정
조선 시대 여성들은 현모양처와 열녀라는 두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욕망과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 책은 그들을 그들로서 이야기하고자 기획되었다. 역사 기록 속에는 적으나마 조선 시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균열시킬 만한 보석 같은 사람들이 숨어 있다. 사회가 가한 금제와 폭력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찾기 위해 애쓴 그녀들의 모습은, 현모양처로 덧칠된 신화를 벗겨내고 우리의 그릇된 고정관념을 깨트린다.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주체적 인간으로서 자각하고, 포기하지 않고 열렬히 살았던 여자들, 이 범상치 않은 여자들의 아름다운 약전이 바로 이 책이다.
◈그녀를 그녀로 존재하게 하라, 신사임당
신사임당, 우리에게는 너무나 무거운 이미지인 l 섬세하고 여린, 예민하고 감성적인 l 유교의 덕목으로 가릴 수 없는 천재적인 예술혼 l 당돌한 새색시 l 친정과 가까운 삶의 환경 l 조선의 안토니아스 라인, 신사임당의 모계 계보 l 그녀가 태임을 본받으려 했던 까닭 l 나를 율곡의 어머니라 부르지 마라
◈임금 앞에 서고 싶었던 규방의 부인, 송덕봉
낯선 풍경 l 총명한 여아에서 정경부인까지 l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다 l 임금이 알아주기 바란 재주 l 사위의 도리를 다하시오 l 되살려야 할 여성의 역사
◈서리 맞은 푸른 연꽃, 허난설헌
마녀재판과 「가위」시 l 누이야, 두보가 되렴 l 두목을 사모한 여자 l 해방의 공간, 광상산 l 자유롭고 방탕한 영혼
◈여성적 필화 사건의 주인공, 이옥봉
천고의 절창 l 아름다운 새가 가지를 고르는 까닭은 l 예술가 l 화장품 냄새를 단번에 씻었다 l 여성적 필화 사건 l 그 삶은 불행했으나 그 죽음은 불후하였다? l 삶도 죽음도 불행했으나, 그 시는 불후하였다
◈일상의 삶을 역사로 만든 여인, 안동 장씨
죽은 자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 l 자애로운 성품, 조용한 카리스마 l 아버지와의 어린 시절 l 친정 일도 살뜰하게 보살피고 l 실천을 강조하는 교육 l 그녀가 공들여 남긴 것들
◈생애는 석 자 칼 마음은 내건 등불, 김호연재
남녀가 어울린 한바탕 시회 l 바구니에 가득한 행복, 술렁이는 심연 l 광명정대한 군자의 마음 l 너희 집안과는 기껍지 않음이 많았다 l 문방구가 근심을 여는 빗장이로다 l 호연
재의 후손들
◈조선 시대의 여성 철학자, 임윤지당
분명히, 밀물은 하루에 두 번씩 온다 l 너도 성인이 되어라 l 비겁이여, 나를 부인으로 여기지 마라 l 마음을 다해 탐구한 학문 세계 l 조선의 블루스타킹
◈제주에서 금강산을 꿈꾼 여인, 김만덕
우국지사와 나란히 l 자기 운명의 개척자 l 크게 벌어 크게 쓴, 진정한 큰 손 l 대궐 구경, 금강산 구경을 한 제주 여성 l 살아서 공적 명예를 누린 조선 여성 l 자기 삶의 경영자
◈시골 색시의 환상과 욕망, 김삼의당
미인도와 풍경화 l 여자의 도움 없이 역사가 이루어졌던가요? l 시골 양반의 과거 급제 프로젝트 l 박제되지 않은 욕망 l 생활인의 감각, 농부가 l 효자 만들기 프로젝트 l 시골 색시의 당돌한 계산, 촌스런 자신감
◈기억으로 자기의 역사를 새긴 보통 여성, 풍양 조씨
은폐된 목소리 l 실패한 열녀의 기록, 『자기록』 l 침묵을 뚫고 나온 목소리 l 기록으로 되살아난 보통 여성
◈남편의 스승이 된 여인, 강정일당
나의 아내여, 나의 벗이여, 나의 스승이여 l 강정일당의 어린 시절 l 가난도 고통도 삼키지 못한 그녀의 영혼 l 남편의 멘토 l 진지함 가운데 드러나는 인간적인 면모 l 앎과 삶이 하나로 l 여성으로서의 자의식 l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니 또한 군자가 아닌가
◈외씨버선발로 금강산을 밟은 남장 처녀, 김금원
세상을 보고 싶다! l 금원의 행·불행 l 여행을 통해 다시 마주한 나 l 새로운 여성 문화 공간, 삼호정 시회를 만들다 l 소통과 연대를 꿈꾸었던 금원과 친구들 l 금원의 여행기, 『호동서락기』
◈바람처럼 살다 간 거리의 예인, 바우덕이
사내들 가운데 웬 미녀 어름사니가 l 안성 남사당패의 꼭두쇠, 바우덕이 l 서울까지 알려진 이름, 안성 바우덕이 l 사당패에서 재능 있는 예인으로
◈미칠 수 있는 에너지를 지닌 여인, 윤희순
위험을 무릅쓰고 l 순전히 ‘미칠 수 있는’ 에너지를 지닌 여성 l 아버님, 저도 가겠습니다 l 아들이냐, 의병장이냐? l 우리 조선 사람들은 목숨을 내놓을 테니 l 1900년대 초반의 조선 여성들 l 뜻으로 산 삶, 조국 독립에의 헌신 l 기억해야 하는 ‘그리운 미친년들’
▶ 현모양처, 타자의 시선으로 덧칠된 그 신화를 벗겨내다
근대 이전의 인물들을 떠올려보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제도교육을 받으면서 자라온 사람들에게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위인 중 기억에 남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어보자. 머릿속에 떠올려 답변할 수 있는 전시대의 역할모델 가운데 혹시 ‘여성’이 있는가? 다시 물어보자. ‘조선 시대의 여성’ 하면 무엇이 떠오르냐고. 현모양처? 열녀? 장희빈? 신사임당? 신사임당이 누구냐고 또 물어볼까? 아마도 십중팔구는 율곡의 어머니라 대답하리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동안 수많은 위인들의 이야기를 듣지만, 그 가운데 여성의 역할모델로 회자된 이름은 신사임당, 퀴리 부인, 나이팅게일 정도였다. 나이팅케일은 ‘백의의 천사’, 신사임당은 ‘율곡의 모친, 현모양처’……. 유명세가 오히려 박제시킨 이러한 인식은, 신사임당을 신사임당 그 자체로, 고뇌하고 눈물짓고 욕망하는 한 여자로 바라보는 것을 완강히 막아버린다. 그 닉네임에선 피가 도는 인간의 숨소리를 들을 수 없다.
우리의 딸들은 우리 할머니들 중에 마음에 드는 역할모델을 전혀 갖지 못하고 자랐다. 누군가의 현모와 양처가 되라는 주입된 가치관보다 사회적·인간적인 성취에 더욱 마음 끌리는 영민한 딸들에게, 가장 닮고 싶은 역사 속의 역할모델은 거의 대부분 남성이었다. 이는 여성성을 부정하는 무의식의 한 부분이 되었다.
조선 시대에 태어난 재능 있는 많은 여성들은 대부분 불우한 삶을 살아야 했다. 놀라운 자질을 타고난 여자 아이라 해도 체계적인 교육의 기회를 얻을 수 없었고, 15세 전후가 되면 시집가서 시댁의 낯선 공간과 엄한 위계 속에 편입된 채 오로지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 상봉하솔(上奉下率)이라는 부녀의 직분만을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인 여자의 삶이었다. 조선 시대가 남긴 역사적·개인적 기록은 수없이 많지만 ‘그 여자’들은 거의 지워져 보이지 않는다. 그녀들은 정말, 거기 살긴 살았던 것일까?
그래서 우리는 ‘조선 시대의 여성’ 하면, 희생하고 인내하며 남성에 순종적이고 정절을 지키는 ‘열녀’나 ‘현모양처’를 얼른 떠올리거나, 권력의 핵심에서 국정을 흔들었던 ‘욕망의 화신’ 또는 ‘천하의 미색’을 떠올린다. 그녀들은 아주 지워지진 않았으나 우리가 아는 그녀들 역시 순수하게 ‘그녀들’은 아니다. 사극 드라마에서 단골로 사용하는 여성들인 민비·장희빈·명성황후나, 황진이·신사임당·허난설헌들조차 우리는 똑바로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 "그들"의 시대에 태어나 "나"로서 당당히 살아갔던 도도한 영혼들의 숨소리
이 책은 "위대한 여인들의 열전"도 아니고, "조선 시대 여성 생활사"도 아니다. 『이덕일의 여인 열전』이나 『한국사를 바꾼 여성들』 등과는 내용에서나 관점에서나 매우 거리가 있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식의 생활사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의 시선은, "위대한 여성"을 내세워 여성의 우월성을 억지 증명하는 것과 현모양처의 깃발 자리에 근사한 영웅주의를 치켜올리는 것에 반대한다. "위대하다"는 수식어는 필연적으로 추상화와 일종의 폭력적인 위압감을 내포하게 된다. 그것은 삶의 구체적인 숨결을 죽이고 그 당사자들을 추상화시킨다. 여성이 사회적인 타자로 젠더화된 세상에서 우리는 그런 위압감에 익숙하다. 우리에게 그런 위압적인 여성이 또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 이 책은, 충·효·열이라는 ‘그들’이 만든 도덕률에 억눌려 살아야 했던 사회적 약자였지만 사람다운 품위를 잃지 않고 당당히 ‘나’로서 살아갔던 개별 여성들의 인생을 드러내고자 했다. 제도와 사상과 관습의 개념적 이해로가 아니라, 한 여자가 자기의 삶을 최선을 다해 견디고 살아가고 장악했던 다양한 방식들, 그들에게는 ‘단 한 가지 방법’이었던 그것을 만나고자 했다.
자신이 죽어도 다시 장가들지 말라고 남편에게 당당히 요구했던 천부적인 화가 신사임당, 술에 취해 방안에 드러누워 사해가 넓음을 시로 읊고 남편에게 거침없이 “나는 며느리의 도리를 다했으니 당신도 사위의 도리를 다하시오”라고 일침을 놓은 송덕봉, 남편의 외도와 시댁 식구들과의 불화를 겪으면서도 ‘여자가 할 탓’이라는 유교적 함정에 빠지지 않고 『자경편』을 저술함으로써 주체적 입장에서 여성 규범을 재검토한 김호연재, 실패한 열녀의 삶을 살았지만 『자기록』을 남김으로써 열녀라는 관습이 결코 미화될 수 없는 잔혹한 것임을 기록으로 증언한 풍양 조씨, 혼인 첫날밤에 당돌하게 남편과 시를 주고받는가 하면 남편의 입신양명과 가문의 부흥이라는 현실적인 욕망을 강력하게 추구했던 김삼의당, 조선 시대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성리학의 쟁점들을 논리적으로 펼쳐내면서 철학적 탐구를 저술로 남긴 성리학자 임윤지당, 남편의 멘토로 존경받았던 강정일당 등등 ……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열네 명의 조선 여성은 시대적 제약 아래서도 삶의 욕망에 솔직했던 주체들, 당당하고 도도한 영혼의 소유자들이다.
▶ 여성 이야기, 이제 자의적으로 윤색된 픽션들을 넘어설 때
사회적으로 여성 담론들이 범람하고, 역사 속의 여성들을 이야기하는 다양한 출판물들도 쏟아져 나오고, 문화인물이나 지역의 인물로 여성이 선정되는 등 다양한 ‘선양’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편의 노파심을 접을 수 없다. ‘현모양처’라는 오래된 덧칠이 신사임당이란 여성의 참모습을 빼앗았듯이, 이 정치적 기획들과 출판물들은 여전히 남성적인, 혹은 상업적인 덧칠이 되고 있는 건 아닌가? 그것이 더 중요한 어떤 삶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성 인물을 다룬 책의 경우―그것이 픽션이든 아니든간에―, 남아 있는 여성 관련 사료가 적다는 한계도 있긴 하지만 남성 화자의 가부장적인 시각으로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안동 장씨는 저명한 남성 작가에 의해 한 편의 소설로 재탄생되었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설교집’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 이 소설에서 작가는 안동 장씨의 입을 빌려 현대 여성의 출산 기피와 성 문란 등의 세태를 비판했는데, 작가의 가부장적인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인 이옥봉은 스스로 자신의 남편을 선택할 정도로 당차고 똑똑한 여인이었다. 훗날 필화 사건으로 남편에게 버림받고 이후의 삶은 알 길이 없는데, 이 때문인지 그녀의 후반생과 관련해서는 소설적 윤색이 심하다. 특히 옥봉이 남편과 재혼하였다가 뚝섬 근처에서 비참하게 죽었다는 기록이나 그녀의 시신이 자신의 시 원고로 싸여 중국에 전해졌다는 일화 등은 흥미롭긴 하지만 그 근거가 희박한 소설일 뿐이다.
이 책은 객관적인 자료로 증명할 수 있는 한도를 벗어나지 않고 그 여성들을 그려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분절된 생애의 기록들을 픽션으로 보충하려는 혐의가 두드러지는 연재글 또는 책들이 눈에 띄는데, 근거가 희박한 일화나 전설들이 역사로 치장되서는 안 될 일이다. 가능한 객관적인 자료로 증명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연구 결과들을 토대로 써 나간 이 책이, 평전이나 소설이 아닌 약전의 형식이 될 수밖에 없는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책의 본문에 각 인물마다 관련 1차 자료와 논저들, 그리고 최근의 연구 동향을 첨부하였다.
▶ 이 책에 실린 여성들
▷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 - 그녀를 그녀로 존재하게 하라
화가. 대학자 율곡의 어머니라는 타이틀만으로는 신사임당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어린 시절부터 발휘된 천부적인 예술가적 재능과 시댁 어른들 앞에서 순종하기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밝히고 남편에게 재가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당찬 여인의 면모, 그리고 사임당의 모계 계보를 통해 본 조선 여성의 모습 등을 다루었다. 현모양처라는 이미지는 유교적 덕목으로 만들어진 허상일 뿐이며, 율곡의 어머니가 아닌 여성 위인으로서 신사임당을 다시 바라봐야 한다.
▷ 송덕봉(宋德峯, 1521~1578) - 임금 앞에 서고 싶었던 규방의 부인
문인. 미암 유희춘의 부인이다. 책 속에 지극한 즐거움이 있다는 유희춘의 가식적 태도를 비난하며 인간적인 면모를 잃는 것이라고 질타한다. 자신의 문재(文才)를 임금 앞에서 자랑하고 싶어했고, 남편이 4개월간 여색을 가까이 하지 않았음을 자랑하자 그것은 선비가 성현의 가르침을 따른 것일 뿐 아녀자의 보은을 바라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며 면박을 주었다. 친정 일에 무심한 미암에게 “나는 며느리의 도리를 다했으니 당신도 사위의 도리를 다하시오” 하며 꾸짖는 기개 넘치는 여인이다.
▷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 - 서리 맞은 푸른 연꽃
시인. 자신의 재능을 다 펼치지 못하고 죽은 불운한 천재 시인이며, 남편과의 불화로 외로운 여인의 삶을 산 여인이다. 둘째 오라비 허봉의 편지와 자유롭고 방탕하기까지 한 그녀의 시들을 통해 시대의 굴레가 그녀의 몸은 속박했어도 자유로운 영혼만은 속박할 수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문학을 통해 그녀는 이미 현실을 초월한 시선(詩仙)이었다. 중국에서도 인정을 받는 시인이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홍대용을 비롯한 남성들에 의해 중상 모략되었던 여러 일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 이옥봉(李玉峰, 16세기 후반) - 여성적 필화 사건의 주인공
시인. 소실의 자리이지만 남편 될 사람을 스스로 선택했고, 이백의 시보다 자신의 시가 더 뛰어나다고 자부하였다. 훗날 필화 사건으로 남편에게 소박맞고 불운하게 생을 마감하지만, 남겨진 기록 속에서 재기에 번득이는 천재 시인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
▷ 안동 장씨(1598~1680) - 일상의 삶을 역사로 만든 여인
『음식디미방』의 저자. 고금의 역사를 읽으며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고, 남편에게 훈계를 아끼지 않았다.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친정에 가서 아버지가 재가하실 때까지 돌봐드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새어머니와 이복동생들을 시댁으로 데려와 가르치고 성가시키는 등 친정을 돌보았다. 뿐만 아니라 이휘일, 이현일 등 영남학파의 두 거봉을 낳아 시댁을 부흥시켰다. 17세기 조선 양반가의 생활상과 음식을 재현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인 『음식디미방』을 저술하여 일상의 삶을 역사로 남겼다.
▷ 김호연재(金浩然齋, 1681~1722) - 생애는 석 자 칼 마음은 내건 등불
시인. 호연재의 시적 재능은 가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천부적인 시인으로 유머러스한 시를 통해 삶의 고단함을 이겨내고, 가부장제에 맞서는 도도한 모습을 보인다. 김호연재의 시에는 친정에 대한 그리움, 여성으로서 사는 고달픔과 한 등 일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이러한 일상을 당시 최고 권위를 지닌 문학 형식인 한시를 통해 당당하게 읊어낸다. 『호연재시집』 및 옛 가옥이 남아 있어 생애를 재구성할 만한 자료들이 비교적 많다.
▷ 임윤지당(任允摯堂, 1721~1793) - 조선 시대의 여성 철학자
성리학자. 녹문 임성주의 누이. 『윤지당유고』에 실린 6편의 설과 2편의 경의에는 ‘이기심성’이나 ‘사단칠정’ 등 조선 시대 성리학의 쟁점이 되었던 문제들을 논리적으로 펼쳐냈다. 두 편의 여성 인물전을 통해 남성보다 여성이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비록 여자지만 하늘에서 부여받은 성품은 남녀의 차이가 없다”고 하여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성리학을 평생 탐구하면서 성인의 경지에 나아가려 했다.
▷ 김만덕(金萬德, 1739~1812) - 제주에서 금강산을 꿈꾼 여인
사업가. 직업이 그 사람의 신분이 되었던 조선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과 경제력으로 기생이라는 신분을 거부하고 양인이 되었으며, 결혼 대신 독신으로 상인의 길을 선택하여 뛰어난 사업 수완을 발휘하여 큰 재력가가 되었다. 제주도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어죽게 되었을 때, 자신의 재산을 풀어 수많은 생명들을 구하고 그에 대한 포상으로 현실적 이익 대신 금강산 구경을 소원한다. 제주 여인은 제주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것이 국법인 사회에서, 자신이 속한 사회의 제도를 넘어서는 결단력과 자신에 대한 높은 자존감을 보여준다. 조선 사회에서 살아서 공적 명예를 누린 몇 안 되는 여성이다.
▷ 김삼의당(金三宜堂, 1769~1823) - 시골 색시의 환상과 욕망
시인. 남편의 입신양명으로 가문을 부흥시키겠다는 프로젝트를 세우고 강력하게 추진한다. 나라에 충성하는 마음에는 남녀의 구별이 있을 수 없으며, 여자의 도움 없이 역사가 이루어진 적이 있었느냐며 남녀 차별의 부당함을 논한다. 권세가와의 인연을 내세워 가문의 부흥을 꾀했고, 마지막에는 지극한 효행을 널리 알려 가문의 신비화를 주도하며 신분 상승을 위해 노력했다. 조선 시대 여류 시인들의 시가 신선이나 꿈을 통한 초월에의 지향이 일반적이라면, 그녀의 시는 현실을 살아가는 구체적인 도구이고, 그녀는 자신의 욕망대로 실현하고 표현하며 살았다. 상층 양반 여성들의 시와는 다른 왜곡되지 않은 욕망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 풍양 조씨(1772~1815) - 기억으로 자기의 역사를 새긴 보통 여성
『자기록』의 저자. 열녀의 길을 택하지 않고 남은 생을 살았던 여인의 모습을 『자기록』이라는 자서전에 기록하여 남겼다. 남편이 죽은 뒤에 따라 죽지 못한 여성들은 죄인처럼 전전긍긍 살았던 데 비해, 풍양 조씨는 자서전을 저술하여 남편의 죽기 전 기록부터 죽은 뒤의 열녀가 되지 못했던 이유들, 그리고 이후 삶을 자신의 목소리로 담아내고 있다. 풍양 조씨의 삶은 특별하지 않지만, 이 특별하지 않은 삶을 ‘기록’으로 남겼기에 그녀의 삶은 지금의 우리들에게까지 ‘특별한’ 삶으로 전해지고 있다.
▷ 강정일당(姜靜一堂, 1772~1832) - 남편의 스승이 된 여인
문인. 가난 속에서도 청렴함을 잃지 않았으며, 철학자의 풍모를 지녔다. 남편의 평생의 스승이었으며, 남편이 직접 그녀의 문집을 엮었는데, 조선 시대 부부 관계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준다. 기록 속에서 간간히 임윤지당을 사숙한 흔적이 보이는데, 이는 여성 간의 사승 관계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부분이다.
▷ 김금원(金錦園, 1817~?) - 외씨버선발로 금강산을 밟은 남장 처녀
시인. 금강산과 그 일대를 여행하고 『호동서락기』라는 기행문을 남겼다. 경춘, 죽서, 운초, 경산 등 여성이 주축이 된 삼호정시사를 만들었는데, 이는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여성 시인들이 그룹을 형성해서 문학 활동을 한 예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삼호정에 모인 여성 시인들은 성인이나 군자 등의 이상적 삶을 모델로 삼지 않고 보편적 인간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표출한다. 삼호정시사는 규방이나 기방이 아닌 새로운 여성 문화 공간을 만들어 남성 문화로 대변되는 중세 문화에서 독자적인 빛을 발한다.
▷ 바우덕이(19세기) - 바람처럼 살다 간 거리의 예인
남사당패의 예인. 남자들의 세계인 사당패에서 최초의 여자 꼭두서니가 된 김암덕(金岩德). 여자 예인과 몸 파는 여성을 동일시했던 당시에 직업적 예인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1900년대 이후에도 바우덕이가 속했던 사당패는 그 명맥을 유지하였고, 오늘날에 와서는 안성시에서 해마다 ‘바우덕이 축제’를 개최하여 바우덕이를 기리고 있다. 비록 쓸쓸하게 병들어 죽지만 “바우덕이 소고만 들어도 돈이 나온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조선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름 없는 거리의 사당패에서 ‘바우덕이’라는 이름을 가진 재능 있는 예인으로 남았다.
▷ 윤희순(尹熙順, 1860~1935) - 미칠 수 있는 에너지를 지닌 여인
독립운동가. 일제에 맞서 여자도 의병 운동을 해야 한다며 의병가를 짓는 한편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여생을 바친다. 윤희순은 1912년 요동에서 동창학교의 분교인 노학당(老學堂)을 세웠으며, 중국 사람들과 망명한 조선인들에게 반일 정신을 고취시켰다. 말년에 첫아들 유돈상이 일본 헌병의 모진 고문을 받고 죽자 그간의 자신의 삶을 「해주윤씨 일생록」으로 남기고 곡기를 끊고 죽음을 택한다.
■ 저자 - 박무영, 김경미, 조혜란은...
한국 고전문학을 전공한 학자들이다. 고전문학 속에서 발견되는 주체적 여성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고전 여성문학을 공부해왔다. 유교적 가부장제, 군사독재 가부장제 사회에서 ‘그들’에 의해 덧씌워진 조선 여성들의 억압된 이미지들을 벗겨내어 그녀들을 그녀들 자신으로 숨쉬게 하기 위해 이번 작업을 시작했다. 각자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갔던 조선 여성들의 숨소리를 살려내는 일에 마음을 다했으며, 사심없이 그녀들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발견하였다.
□ 박무영
조선 후기 한시를 전공하고, 다산 정약용의 문학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 후기 한시 문학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는 한편 여성 한시를 둘러싼 여러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저서 및 역서로는 『정약용의 시와 사유방식』, 『한국고전 여성작가 연구』(공저), 『뜬세상의 아름다움』 등이 있다. 현재 연세대학교 국문과에서 가르치고 있다.
□ 김경미
조선 시대의 소설론을 전공하고 논문을 썼다. 19세기 문화와 소설론의 관계와 여성 생활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으며, 요즘 이 둘 사이를 오가며 글을 쓰고 있다. 저서 및 역서로는 『소설의 매혹-조선 후기 소설 비평과 소설론』, 『한국의 열녀전』(공역) 등이 있다. 현재 이화여대에서 글쓰기 강의를 담당하고 있다.
□ 조혜란
고전 문학을 전공했으며, 「삼한습유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 여성들의 삶의 실상을 밝히는 이른바 고전 여성 문학을 계속 공부하고 있다. 저서 및 역서로는 『옛 여인들 이야기』, 『19세기 서울의 사랑-절화기담 포의교집』(공역) 등이 있다. 현재 이화여대에서 글쓰기 강의를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