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저널10월에 실린 [계백반굴관창]
영웅이 아닌,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비애... 그리고 비장함을 그려낸 그림책 [계백반굴관창]
저는 일러스트레이터이고 [장수]라는 신생 출판사의 대표입니다. 오래전부터 출판사를 설립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암중모색만 하다 작년 12월에 우연한 인연으로“우상 이언진”이라는 조선 후기의 한 인물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봐도 파격적인 글을 썼고 자신의 글들을 스스로 불태우다 27세에 요절한 그 외롭고 한스러운 삶에서 계속 망설이는 저 자신이 너무 한심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올 1월에 [장수]라는 출판사를 설립하였고 첫 책으로 [계백반굴관창]이 7월에 출간되었습니다. 저는 장수[將帥]와 관련된 그림을 주로 그렸고 대부분은 위인전이였습니다. 십여 년간 활동하며 더 나은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여러 조건과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나마 좋았던 기회도 자의든 타의든 더 진행되지 못했던 경험들. 최근 몇 년 동안 직접 글까지 쓰고 준비해서 여러 출판사에 투고도 했었는데 그것조차도 잘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러한 모든 것들이 맞물리면서 제가 직접 출판하게 된 계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계백반굴관창]의 표지를 보십시오. 국내 그림책에서 이런 표지 그림을 본 적이 있었습니까? 언뜻 보면 그냥 무서워 보이지만 이 표지 그림은 이 그림책의 모든 것을 보여주며 이것이 바로 [장수]라는 출판사와 제가 만들고자 하는 그림책의 가치이자 철학이고 스타일입니다. 글도 일반적인 그림책의 글과는 많이 다릅니다. 몇 년전부터 우리의 고문을 공부하면서 위인전, 그것도 장수가 주인공인 그림책에서 가볍고 얌전한 글들을 고문체의 유려하면서도 깊이 있는 문체로 쓸 수 없을까 고민하다 제가 직접 썼고, 이야기 구성도 세 주인공이 교차하면서 각 순간마다의 애절한 상황과 최고의 장면을 위해 기승전결 구조를 과감하게 파괴하였습니다. 내용에서도 단순한 영웅 서사시가 아닌 전쟁에 대한 고통과 두려움, 비애 등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을 불어 넣으려 했습니다. 원래 글 작가가 아니라서 그런지 이 짧은 글을 쓰는데 약 4년이 걸렸다면 많은 분이 믿기 힘들 겁니다.
“그림책은 과연 아이들만을 위한 책일까요?”뜬금없는 질문인데, 우리에겐 선뜻 그림책에 대한 작은 편견이 있습니다.‘그림책은 아이들이 보는 책’그러나 오늘날 그림책의 세계적인 추세는 그 대상이 전연령층으로 확대된 지 오래고, 세계적인 그림책의 미적인 수준과 깊이는 어른들에게도 큰 감동을 줍니다. 그러나 국내의 현실은 아직도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한 그림책이 대다수입니다. 그런데 장수그림은 아이들만을 위한 그림책으로 한정한다면 매우 제한적이고 제대로 된 표현을 할 수 없습니다. 또한, 더 근본적인 의문이 있었는데‘왜..? 그림책의 그림들은 순수미술이나 다른 시각적인 창작물들과 비교했을 때 평균적으로 그 수준과 완성도에서 떨어지는가?..’그러다 최근에 저 스스로 내린 답은‘혹시..? 아이들만이 보는 그림이라서 조금은 더 쉽게 그리는 걸까.. 만약 그 대상이 어른들까지도 본다면 이렇게 쉽게 그릴 수 있을까?..’그래서 아직도 삽화라는 말을 서슴없이 쓰는 사람들이 있나 봅니다. 저의 목표는 그림책 시장의 대상을 성인층으로까지 확대하여 그에 걸맞은 수준의 그림책을 만드는 것이고, 삽화가 아닌 그림이고 그림책 이상의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끝으로 오랫동안 장수 그림을 그리며 생각했던 것인데 중국은 [무협], 일본은 [사무라이와 닌자]라는 확고한 콘텐츠와 거의 국가를 상징하다시피 하는 강렬한 이미지로까지 발전시켰습니다. 우리에게도 그 이상의 더 위대한 장수들이 많지만, 후손들이 못난 탓인지 그동안 많이 소홀했고 발전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어떤 방향으로 우리만의 차별화되고 독특한 콘텐츠로 만들 수 있을까? 제가 내린 결론은“인문학”이고, 인문학으로 풀기로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문학의 뿌리인 신화와 역사 그리고 선조들이 남기신 위대한 고문들이 많은데 왜? 하지 못하겠습니까.
[계백반굴관창]은 이제 그 시작일 뿐입니다.
글 |박의식 장수 대표 박의식 지음|장수|42쪽|값 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