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기행 - 선인들, 스스로 묘비명을 쓰다
오랜만에 읽은 명작이라 밑선으로 온 책을 덮었다.
명문이 너무 많아 이 작은 블로그에 옮기기도 쉽지 않고, 어울리지도 않는것 같다...
이 책의 진가를 알고 싶은 분은 필히 직접 읽어보시길...
그래서 인상 깊은 문구는 따로 적지 않았다.
내면기행 - 선인들, 스스로 묘비명을 쓰다
심경호 (지은이) | 이가서 | 2009-10-01
반양장본 | 612쪽 | 230*164mm | 1163g | ISBN(13) : 9788958642718
근데 이전 한국에서 이루어진 자찬묘비명 글쓰기의 양식을 모두 망라하고 주요 작품들을 처음으로 소개 혹은 번역한 책이다. 원문에 대한 단순 번역을 넘어서서 해당 인물들의 일대기와 또 그들이 살았던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그들이 삶과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총체적인 관점에서 풀어냈다.
쉽게 접하기 어려운 자료를 소개하고 현대어로 번역하였으며, 이미 익숙히 알고 있는 인물에 대해서도 그의 자찬묘비명에 담겨 있는 정신지향을 깊이 있게 분석하여 수록하였다. 근대 이전의 자서전적 글들은 서구지성사에서 발원한 현대적 자서전과는 달리 길이가 짧지만, 인물 전형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성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1200년대의 김훤에서 1900년대를 살다간 이건승까지. 지금으로부터 멀게는 800년 전, 짧게는 100년 전의 삶과 죽음이 이 한 권에 담겨 있다. 저자는 글을 남긴 원 저자의 심리와 지향을 읽어내어, 그들 하나하나의 삶과 죽음의 그림을 그려내려 노력했다. 그 결과로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의 글들이지만, 한 시대를 살다간 살아 있는 한 사람을 담아냈다.
ㆍ책을 엮으며
제1부 이사람을 보라
제2부 이것으로 만족이다
제3부 나 죽은 뒤에 큰 비석을 세우지 말라
제4부 웃어나 보련다
제5부 죽은 뒤에나 그만두련다
여적
ㆍ참고문헌
ㆍ본서에 다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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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83 : 이홍준은 스스로 작성한 짧은 묘지명에서 "재주 없는데다 덕 또한 없으니 사람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다. 나면서부터 진리를 터득한 생지(生知)의 성인도 아니고, 배워서 진리를 터득하는 학지(學知)의 현인이나 철인도 못 되며, 시행착오의 곤란을 겪으면서 삶이 무엇인지를 터득해가는 곤지(困知)의 보통사람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곤지(困知)조차 못하여 중인(中人, 보통사람)만도 못하다는 냉혹한 자기비판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살아서는 벼슬 없고 죽어서는 이름 없으니 혼일 뿐이다"라고 자조하여본다. 지각을 가진 혼령이 아니라 지각도 없는 어둑어둑한 명혼(冥魂)으로 끝난다면 정말 서글플 따름이라고 두려워한다.
옛사람들은 죽음이 가져올 내 존재의 무화無化를 극복하려면, 영원히 썩지 않을 세 가지를 이루라고 했다. 덕德과 공功과 언言, 그 셋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이루어야 이름이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라고 했다. 이것도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태어날 때는 몸이 빛났건만, 인간은 갖은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몸의 정기를 잃고, 살아 있으면서 죽어가기 마련이다. 세상의 부조리를 참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삶은 더욱 고통스럽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죽은 뒤에야 그만둘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 아닌가. -4쪽
선인들은 죽음에 대처하면서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자신의 본래성을 추구했다. 죽음이 가져다줄 통절한 아픔과 슬픔을 가상으로 체험함으로써 죽음이 보편성을 배우고, 고독 속에서 홀로 겪게 될 죽음의 순간에 느낄 슬픔을 극복할 수 있었다. 또 죽음의 절박함을 알았기에 삶속에서 진정한 희열을 맛보고자 했다. -7쪽
심경호
최근작 : <동서양의 문명과 한국>,<한국학의 학술사적 전망 1>,<한시의 성좌> … 총 99종 (모두보기)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일본 교토 대학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과 강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거쳐 현재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및 한자한문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조선 시대 한문학과 시경론』, 『국문학 연구와 문헌학』, 『김시습 평전』, 『다산과 춘천』, 『한문 산문 미학』, 『한시의 세계』, 『국왕의 선물』, 『참요』, 『한국 한문 기초학사』(전3권), 『한시의 성좌』,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금오신화』, 『서포만필』, 『삼봉집』, 『논어』, 『주역 철학사』, 『불교와 유교』, 『한자학』, 『한자 백 가지 이야기』, 『일본서기의 비밀』, 『증보역주 지천선생집』(공역), 『역주 원중랑집』(공역), 『일본 한문학사』(공역) 등이 있다. 성산학술상, 일본 시라카와 시즈카(白川 靜) 선생 기념 제1회 동양문자문화상, 우호인문학 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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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호의 한 마디
옛사람들은 자기의 묘표와 묘지를 적고 자기의 만시를 지으면서 이만하면 됐다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하고, 부조리에 대한 격한 감정을 간결한 언어로 응축시켜 남기기도 했으며, 인간의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너털 웃음을 웃기도 하고, 말래야 말 수 없는 자기 양심을 발로하기도 했다. 묘표에 운문이 첨가되면 묘비명, 묘지에 운문이 첨가되면 묘지명이라 했다. 그러한 기록들을 통틀어 편의상 자찬묘지명이나 자찬묘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사색은 곧 삶에 대한 사색이자, 내 안의 숭고함을 되찾는 일이다.
자찬묘지·묘비명의 종합
이 책은 근대 이전 한국에서 이루어진 자찬묘비명 글쓰기의 양식을 모두 망라하고 주요 작품들을 처음으로 소개 혹은 번역하여, 한국고전문학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또한 자지(自誌),자명(自銘) 등의 자료들을 분류, 정리하여 총망라함으로써 이 방면 연구의 초석을 놓았다. 또한 이 책은 원문에 대한 단순 번역을 넘어서서 해당 인물들의 일대기와 또 그들이 살았던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그들이 삶과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총체적인 관점에서 풀어냈다. 그리고 이는 그대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삶의 지향을 말해주는 것으로 바로 우리 선조들의 정신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선조들의 자서전에서 보여주는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은 ‘그 시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우리를 앞서 살다간 선조들이 들려주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지금의 삶을 생각하게 하는 현재적 가치와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묘비명
이 책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자료를 소개하고 현대어로 번역하였으며, 이미 익숙히 알고 있는 인물에 대해서도 그의 자찬묘비명에 담겨 있는 정신지향을 깊이 있게 분석해서 현대의 독자들이 접근하기 쉽도록 했다. 근대 이전의 자서전적 글들은 서구지성사에서 발원한 현대적 자서전과는 달리 길이가 짧지만, 인물 전형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성찰하는 방식은 오히려 현대인들의 자기 성찰에 일정한 참고가 될 만하다. 묘비명만 남아 있을 뿐 만날 수도 대화를 나눌 수도 없는 선인들의 삶을 그려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문헌의 일차적 해석에 그치지 않고 행간을 읽음으로써 글을 남긴 원 저자의 심리와 지향을 읽어내어, 감성적이고 문학적인 저술을 행하였다. 또 당시 시대상의 파악에 필요한 관련 자료들과 원 자료의 해석에 요구되는 방계 자료들을 수습하여 하나의 퍼즐을 맞추듯이 그들 하나하나의 삶과 죽음의 그림을 그려내려 노력했다. 그 결과로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의 글들이지만, 한 시대를 살다간 살아 있는 한 사람을 담아냈다. 그래서 번역과 해설을 읽다보면, 인물 열전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 각 인물이 활동한 시대별 역사안내서를 읽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우리의 묘비명
1200년대의 김훤에서 1900년대를 살다간 이건승까지. 지금으로부터 멀게는 800년 전, 짧게는 100년 전의 삶과 죽음이 이 한 권에 담겨 있다. 그러니 이 책 안에서도 70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의 삶과 죽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 덧없고 무기력한 삶을 극복하고 삶의 의미를 추구한 궤적이 그들의 묘비명 담겨 있다. 인간의 삶만큼 강한 것은 없다는 것을, 우리 개개인의 삶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700년을 관통한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이 큰 울림으로 전해준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자기의 삶을 성찰한 방식을 이해하고 각자의 삶을 성찰하는 기회를 갖게 되기를, 그래서 스스로 묘비명을 쓰게 되기를 바란다. 기쁠 때든 슬플 때든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보는 것은 자기 삶의 의미를 재확인하는 아주 강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 살아서 죽음을 극복하다
옛사람들은 죽음이 가져올 내 존재의 무화를 극복하려면, 영원히 썩지 않을 세 가지를 이루라고 했다. 덕과 공과 언, 그 셋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이루어야 이름이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라고 했다. 이것도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태어날 때는 몸이 빛났건만, 인간은 갖은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몸의 정기를 잃고, 살아 있으면서 죽어가기 마련이다. 세상의 부조리를 참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삶은 더욱 고통스럽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죽은 뒤에야 그만둘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 아닌가. 옛사람들은 죽음이 가져올 내 존재의 무화를 극복하는 한 가지 방식으로 살아 있으면서 자기의 묘표와 묘지를 적고 자기를 애도하는 만시를 지었다. 옛사람들은 자기의 묘표와 묘지를 적고 자기의 만시를 지으면서 이만하면 됐다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하고, 부조리에 대한 격한 감정을 간결한 언어로 응축시켜 남기기도 했으며, 인간의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너털웃음을 웃기도 하고, 말래야 말 수 없는 자기 양심을 발로하기도 했다. 선인들은 죽음에 대처하면서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자신의 본래성을 추구했다. 죽음이 가져다줄 통절한 아픔과 슬픔을 가상으로 체험함으로써 죽음의 보편성을 배우고, 고독 속에서 홀로 겪게 될 죽음의 순간에 느낄 슬픔을 극복할 수 있었다. 또 죽음의 절박함을 알았기에 삶속에서 진정한 희열을 맛보고자 했다. 선인들은 자신의 학문과 활동이 이 세상에 무언가 가치 있는 결과를 가져오기를 염원하였기에, 인생의 어느 순간에 죽음을 의식하고 이제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스스로를 혁신할 기획을 세웠다. 우리 선인들도 영원한 것의 표상에 도달하려 애쓰지만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번민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그들은 바로 그 어둠 속에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빛을 찾아내어 죽음으로부터 살아 돌아왔다. 슬픔 같은 것이 저며오는 때도 있었지만, 끝내 음울함 속에서 죽어가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선인들이 자기의 죽음을 예상하면서 쓴 묘표, 묘지와 만시 속에는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것들이 담겨 있는 것이다.
죽음이 그 사람을 이야기해준다
죽음의 문제에 대한 연구로는 필립 아리에스의 《죽음 앞의 인간》과 김열규 님의 《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하라》가 저명하다. 필립 아리에스는 익명의 사람들의 집합적 역사를 다루는 방법론에 따라, 저술가나 성직자들의 비균질적 자료를 분석해서 죽음에 관한 집합적 감성이 표출되어 있는 방식에 주목했다. 김열규 님은 우리의 민속과 고전문학의 자료를 풍부하게 인용하여 한국인의 ‘죽음론’을 개괄하고 죽음의 문화적·신화적 형상에 주목했다. 이 책은 이러한 선행 업적들에 주목하면서, 익명의 사람이 아니라 역사적 인물들이 일회적 삶을 살면서 그 삶에서 보편의 문제를 제기했던 개인사에 주목하고, 묘비를 세우고 지석을 묻을 수 있었던 지식인 계층의 죽음론을 전문적으로 다루었다. 개인의 특수성과 계층의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50여 남짓의 선인들이 스스로 남긴 묘표와 묘지, 그리고 만시에는 한국인이 죽음에 대해 지녀왔던 보편 관념의 한 국면이 드러나 있으며, 그것은 그대로 오늘날 우리 자신이 스스로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때에 참조준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