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탐나면 ‘책읽기교육’ 일궈야
한기호의 출판전망대 /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가 소설·영화·캐릭터 등으로 1997년부터 2006년까지 벌어들인 총매출액은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반도체 수출 총액인 231조원을 훌쩍 넘어선 308조원이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 한 권의 효용을 어찌 경제적 가치로만 가늠할 것인가? 전세계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어 영국의 이미지를 매우 긍정적으로 바꾸어놓은 것을 고려하면 그 가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리라. 이명박 대통령이 한 출판행사에서 자신의 임기 중에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으면 한다는 욕망을 표출한 것은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국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 가장 큰 이유로 번역을 꼽았다. 중국과 일본에 비해 매우 미미한 우리 문학작품의 번역량을 보면 그리 틀린 지적은 아닐 듯하다. 하지만 노벨문학상을 타지 못한 것이 단지 번역 탓이기만 할까? 설사 한두 사람의 탁월한 문인이 수상했다손 치더라도 우리 문학 전체의 질이 일취월장하는 것은 아니다. <해리 포터>가 탄생한 영국은 수만 곳의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고, 수십 년에 걸쳐 독서교육을 벌였으며, 수천만 명의 국민이 돈 많이 벌고 자기계발을 하고 자식교육 잘 시키는 책이 아니라 상상력을 키우는 인문학 서적을 평생 읽은 결과로 탄생한 것이다.
어디 노벨문학상뿐인가? 일본은 올해 노벨물리학상과 노벨화학상에 모두 네 사람의 공동수상자를 배출했다. 이웃나라에서 연속해서 노벨상을 배출하자 이장무 서울대 총장은 지난 14일, 우리라고 “배출 못할 게 없다”며 “서울대 교수와 졸업생이 국민적 여망인 노벨상 수상에 성공할 수 있도록 교직원·동문·독지가의 긴밀한 지원망을 구성하고,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과학상 또한 의지만으로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일본에는 이미 수많은 기초과학 서적과 인문학 서적이 다양하게 출간돼 대중이 아주 어려서부터 그런 책을 쉽게 접할 환경이 조성돼 있다. 과학책 몇 권만 내놓아도 우수한 과학출판사로 손꼽히는 우리로서는 결코 넘볼 수 없는 두터운 철옹성이 구축돼 있다.
10월 초에 한국문학번역원이 개최한, ‘세계 속의 한국 문학, 그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진행된 콘퍼런스에서 35년 동안 한국 문학 작품을 번역해 온 케빈 오룩 교수(경희대)는 외국인들 사이에 한국은 ‘말씀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말만 앞서고 실천이 없는 것이 한국의 문화적 특징이라는 것이다. 오룩 교수의 뼈아픈 지적을 우리가 부정할 수 있으려면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는 학교 현장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지금 초·중·고 학교 현장에서는 학교 서열을 올리기 위해 한 문제라도 더 풀어야 한다며 그나마 진행하던 ‘아침 10분 독서’ 같은 소박한 독서운동마저 폐기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한다. 한마디로 학교교육이 책읽기와 담을 쌓는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그럴싸한 ‘말씀’을 하신 분들은 이런 현실부터 바꾸는 데 헌신해야만 자신의 말이 식언이 아니었음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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