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이야기

참된 이상은 예술가가 골방에서 혼자 만든다.

이카로스의 날개 2009. 1. 15. 01:37

 

 

참된 이상은 예술가가 골방에서 혼자 만든다.

 

                                              - 김동렬

 

한때는 야후가 빅브라더였는데 지금은 네이버가 빅브라더다. 빅브라더는 날로 탄생한다. 그만큼 우리는 동호회로 쪼개고, 블로그로 숨고, UCC로 쪼개지고, 웹 2.0으로 착실하게 분열해서, 각자의 해방구를 가지고, 각자의 소도를 가지고, 각자의 영역을 고수하며 비밀스런 자기만의 왕국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빅브라더의 감시망을 피하고 그 통제권 밖으로 벗어나는 것이다. 위로 크게 시장이 합쳐지는 만큼 밑으로는 악착같이 쪼개놓는 것이 진정한 진보의 임무다. 생텍쥐베리가 말한 어린왕자의 소행성을 생각할 일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행성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기다. 개인과 개인의 간격을 하늘과 땅만큼 벌려놓기다.

 

이는 역사의 영원한 두 수레바퀴다. 헤겔이 말한 정과 반의 대응이다. 한쪽에서는 계속 합치고 한쪽에서는 계속 쪼갠다. 위로 시스템이 합쳐지는 만큼 같은 비례로 밑으로 쪼갠다. 악착같이 쪼개놓는다. 개인주의는 날로 강화된다. 빅브라더의 통제권을 벗어나서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영역을 가져야 한다. 문화의 전선, 예술의 전선, 문학의 전선, 교육의 전선, 패션의 전선에서 그 싸움 벌여나가야 한다. 이문열 같은 얼간이는 패대기치고 이외수처럼 이미 그 개인의 왕국을 건설해 놓은 선각자는 옹호하고.

 

한국모델의 완성이 진정한 진보다

마찬가지로 진보는 개별 문명의, 개별 국가의, 개별 민족의, 개별 사회의, 개별 공동체의, 개별 동호회의,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 개개인의 값어치를 올리는 것이어야 한다. 그 각각의 값어치는 각자의 모델의 완성도에서 얻어진다. 한 개인의 값어치는 한 개인의 각성에서 얻어지고, 한 사회의 값어치는 그 사회가 일구어놓은 문화적 양식의 완성도에서 얻어진다.

우리가 그렇게 우리의 고유한 문화와 양식을 완성할 때, 마침내 한국모델을 완성할 때 비로소 가치를 수출할 수 있게 된다. 가치를 수출할 수 있어야 진짜다. 한국모델은 이거다 하고 말할 수 있어야 선진국이다. 일본이나 미국이나 서구나 특정 외국모델을 추종하는 것이 수구꼴통이다. 말로는 진보를 표방하지만 본질은 북유럽을 추종하는 좌파 수구꼴통 많다. 남의 정신을 수입하여 뇌 이식수술 하려는 자는 어떻게든 결과적으로 인간의 가치를 해치게 된다. 개인의 가치를 훼손하게 된다. 그들은 우리 편이 아니다. 친일파나 친미파나 친유럽파나 본질은 같다.

 

합의될 수 있는 부분을 이야기해야 한다. 진보의 궁극에 이상주의가 있다. 그 이상주의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요임금 순임금 때가 이상이라고 말해서 안 된다. 그것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낡은 이상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의 이상이 다르고 모택동의 이상이 다르고 어제의 이상이 다르고 오늘의 이상이 다르고 내일의 이상이 또 달라야 한다. 날로 새로워지는 것, 그렇게 부단히 다름을 일구어 가는 것이 바로 진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이상이 다르고 미국의 이상이 달라야 한다. 한국모델이 다르고 미국모델이 달라야 한다. 모두가 똑같아야 한다고 우기는 폭력이 파시즘이다. 달라야만 우리의 가치를 수출할 수 있다. 진보가 명목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획일화된 가치-그것도 외국에서 수입된 철지난-를 주장하고 있지나 않은지 반성해야 한다.

 

이상주의는 합의될 수 없다. 한국의 이상과 미국의 이상, 스웨덴의 이상은 절대로 같을 수가 없다. 같지 않은데 각자의 존재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같다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존재 이유가 없다. 다르므로 각자의 존재가 정당화되는 것이다. 한 개인의 가치는 개인이 꾸는 꿈의 가치에서 얻어지고 그 꿈은 자기 안에서 퍼펙트하게 완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너의 이상과 나의 이상이 절대로 다르기 때문에 너와 내가 각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가치의 실천에 있어서는 합의될 수 있다. 그리고 정치는 다만 합의될 수 있는 부분을 합의할 뿐이다. 너의 이상과 나의 이상은 절대로 다르지만 공공의 적을 퇴치하는 부분에서는 합의될 수가 있다. 각자의 꾸는 꿈은 달라도, 그 다름을 존중하면서 행동통일은 가능하다.

 

참된 이상은 예술가가 골방에서 혼자 만든다. 경제인들은 그 이상향으로 갈 수 있는 에너지의 토대를 제공할 뿐이고, 정치인들은 그 실천과정에서 조금씩 합의해 갈 뿐이다. 정치가 모든 것을 하려고 해서 안 된다. 정치는 경제를 일정수준 이상 지배할 수 없고, 경제가 효율의 이름으로 문화를 왜곡해서도 안 된다. 최종적으로는 문화적 양식의 완성도가 남는다. 그것은 각자 제 위치에서 제각기 완성된 거룩한 개인들 사이에서의 소통의 양식이다. 개인이 자기 자신의 이상주의를 품을 때 그 모든 것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