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초상화 - 형과 영의 예술 (양장)
저자 조선미 지음 출판사 돌베개 2009-11-09 출간 | 판형 B5 | 페이지수 584
인상깊은 문구
- 나아가 우리 초상화는 그 상용형식이 다양하지 못하고 일정의 전형성을 보이며, 극적인 포즈나 형용은
꺼린다... 동적인 느낌을 던져주는 포즈는 취하지 않는다...거의 모든 초상화에서 나타나듯 이 얼굴 각도와
똑같은 시선 처리를 하고 있다...[쇼이치국사상], [다이토국사상] 처럼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심리상태를
노출시키는 것과는 차이를 보인다.
- 따라서 비록 융통성이 없고 딱딱한 감을 주지만 어쭙짧은 개성에의 폭주는 방지되었으며...
- 만일 나의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역사를 돌이켜 볼지어다.
- 공명과 부귀를 가졌더라도 변변찮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낮추고 겸손하여
자기 자신을 가눌 수 없는 듯해도 천하 후세의 인망을 한 몸에 받기에 충분한 사람이 있다.
- 외로운 소나무는 추위를 가볍게 여겨야 절개가 드러나고
북극성은 하늘의 중심에 있어야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법.
초상화의 모습만으로
이 사람의 틀과 기상 대략 알 수 있으니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없는 것은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네.
- 옹은 키가 작고 외모가 보잘것 없어서, 그를 잘 모르는 사람중에 그 속에 이렇게 탁월한 지식과 깊은
견해가 있으리라는 것을 모르고 그를 만만히 보고 업신여기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번번이
싱긋이 한번 웃고 말았다...
겉모습은 모자라고 수수해 보이지만, 속은 상당히 영특하고 지혜로워 뛰어난 지식과 교묘한 생각을 가졌다.
- 문신과 무신의 차이는 오직 가슴에 부착된 흉배 문양에서 드러날 뿐이다.
중국이나 일본의 일부 무인상에서 발견되는 동적인 자세나 말, 창, 화살 등 무인을 상징하는 지물을 조선시대
무인 초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문인 초상과 마찬가지로 정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형(形)과 영(影)의 예술『한국의 초상화』.
74점의 초상화 걸작을 통해 한국 초상화에 얽힌 이야기를 전하는 책이다. 조종(祖宗)이 영구하기를 바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왕의 초상 ‘어진’과 후손들이 선조의 진영을 모셔놓고 제사지내기 위한 용도의 ‘사대부상’, 국가에 공헌한 인물들을 본받게 하고자 왕이 하사했던 ‘공신상’, 노 대신이 기로소에 든 것을 경축하는 ‘기로도상’ 등 조선시대에 제작된 초상화들을 생생한 컬러 도판과 함께 실어 흥미로운 한국 초상화의 예술 세계로 안내한다.
한국 초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사실적인 묘사’에 있다. 천연두 자국이나 기미, 주근깨, 반점 같은 피부상의 특징은 물론, 눈꺼풀의 묘사나 수염 처리, 주름의 형상은 마치 실제 모습 그대로를 옮긴 듯하다. 왜곡이나 변형을 통한 회화적 효과도, 의도적 과장도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초상화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실제 인물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한국 초상화의 묘는 바로 이러한 ‘재현의 극’에서 오는 뛰어난 표현력에서 찾을 수 있다.
제1장 서론 부분에서는 이 책의 전반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 초상화의 전반적인 흐름을 개관하고 우리나라 초상화가 지닌 성격과 유형에 대해 기술한다. 제2장부터 8장까지는 초상화 주인공의 신분에 따라 왕, 사대부, 공신, 기로, 여인, 승려 등 여섯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 후, 각 유형마다 대표적인 걸작들을 총 70여점 선정하여 한 작품씩 차례로 고찰하고 있다.
또한 마지막 별지 부분에는 ‘도표로 보는 한국 초상화 연보’를 수록했다. 이는 한국 초상화 중 걸작품 및 주요 작품들을 유형별ㆍ시대별로 분류한 것으로, 해당하는 작품들을 도표 형식으로 게재한 것이다. 이를 통해 시대적 추이에 따라 한국 초상화의 표현 형식과 기법이 어떻게 변모하는지, 그리고 유형별로 대상 인물들은 주로 어떤 복식을 착용하는지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 이 책의 감상 포인트!
이 책에는 초상화 속 인물의 삶뿐만 아니라 그들이 살았던 시대상, 초상의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과의 교유관계, 그린 화가의 이야기와 그림이 그려지고 현재까지 전해진 내력, 그림 위에 직접 혹은 문헌자료에 간접적으로 남아 있는 인물 및 초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초상화를 통해 당시 시대를 이해하고 탐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한국의 초상화"
저자소개조선미 趙善美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과를 졸업하고(미학 부전공), 서울대학교 미학과에서 철학 석사학위(미학 전공)를 받았으며,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미술사학과에서 문학 박사학위(미술사 전공)를 받았다.
일본 도쿄대학 문학부 Visiting Scholar, 미술사학연구회 회장,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과 문화재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예술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초상화연구』(열화당, 1983), 『화가와 자화상』(예경, 1995), 『초상화 연구-초상화와 초상화론 』(문예출판사, 2007), 역서로는 『중국회화사』(J. Cahill, 열화당, 1981), 『회화론』(L. Venturi, 형설출판사, 1984), 『미술의 이해』(J. Vincent,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90), 『동양의 미학』(今道友信, 다?미디어, 2005), 논문으로는「柳宗悅의 韓國美術觀」(1988), 「세키노 타다시」(2005), 「孔子聖蹟圖에 대하여」(2009) 외 다수가 있다.
목차
왕의 초상(5점) 태조어진|연잉군초상|영조어진|철종어진|고종어진
사대부의 초상(44점) 최치원초상|안향초상|이조년초상|염제신초상|이색초상|이숭인초상|최덕지초상|정식부부초상|김시습초상|이현보초상|김진초상|유근71세초상|허목초상|송시열초상|남구만초상|윤증초상|신임초상|윤두서자화상|조영복초상|심득경초상|이삼초상|유수초상|전일상초상|이광사초상|주도복초상|임매초상|강세황초상|이창운초상|채제공초상|심환지초상|오재순초상|유언호초상|서직수초상|이채초상|신응주초상|조씨삼형제초상|김정희초상|허전초상|신헌초상|이유원초상|이하응 초상|최익현초상|전우초상|황현초상
공신상(14점) 이천우초상|신숙주초상|오자치초상|유순정초상|송언신초상|유숙초상|임장초상|이성윤초상|정충신초상|이중로초상|박유명초상|이시방초상|김석주초상|오명항초상
기로도상(3종) 권대운초상|기사계첩|기사경회첩
여인 초상(3점) 하연부부초상|계월향초상|운낭자상
고승진영(5점) 각진국사상|학조대사상|사명대사상|재월대사상|화담대사상
"네 모습은 지극히 약하며 네 말은 분별이 없으니, 구렁 속에 빠져 마땅하다."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자화상을 그릴 때마다 이와 같은 찬문을 함께 남겼다. 그림에서조차도 현실에 분노하고 세상을 야유하며 자신을 학대했다. 아쉽게도 김시..
세자 못돼 불안한 안색 21세 연잉군, 30년 후엔 자신만만한 군주 되었네한국일보 | 2009-11-13
왕·사대부 등 초상화 걸작 74점 소개한국의 초상화_형과 영의 예술/조선미 지음/돌베개 발행ㆍ584쪽ㆍ4만5,000원출판 1면/ 연잉군이던 21세 때의 초상화 속 영조는 수척하다 싶을 만큼 호리호리한 모습이다. 신중하고 온유한 표정 속에 울적한..
“혼까지 살려낸 조선 초상화 ‘진액’ 담았어요”한겨레 | 2009-11-13
[한겨레] ‘한국의 초상화, 형과 영의 예술’ 쓴 조선미 교수〈한국의 초상화, 형(形)과 영(影)의 예술〉조선미 지음/돌베개·4만5000원걸작 74점 형식·기법 등 심층 분석40년 공력 담아 인물·시대 함께 소개 치솟은 눈썹과 맹수 같은 눈초리, ..
터럭 한 올이라도 다르면 그 사람이라 할수없으니…매일경제 | 2009-11-13
"네 모습은 지극히 약하며 네 말은 분별이 없으니, 구렁 속에 빠져 마땅하다."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자화상을 그릴 때마다 이와 같은 찬문을 함께 남겼다. 글에서조차 자기 삶 자체를 부정하고 질타했다. 현실에 분노하고 세상을 야유하..
출판사 서평한국 초상화의 이해와 감상
- 일반인을 위한 최초의 한국 초상화 감상서
초상화 연구의 권위자 조선미 교수가 엄선한 74점의 초상화 걸작을 통해 한국 초상화의 예술 세계로 안내하며 각 초상의 인물과 시대를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그간 전시회나 도록, 논문 등을 통해 비교적 소략하게 혹은 다소 전문적인 내용으로 접해왔던 한국 초상화의 세계가 역사 속 인물들의 생생한 진영眞影과 함께 재현되며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역사?문화와 함께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한국의 초상화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묘 주인 초상으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지만 현재 전하는 유품을 통해 살펴보면 유교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제작된 작품이 거의 대부분이다. 조종祖宗이 영구하기를 바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왕의 초상 ‘어진’과, 후손들이 선조의 진영을 모셔놓고 제사지내기 위한 용도로 제작한 ‘사대부상’, 국가에 공헌한 인물들을 본받게 하고자 왕께서 하사했던 ‘공신상’, 노 대신이 기로소에 든 것을 경축하는 ‘기로도상’ 등 한국의 초상화는 대상 인물층이나 작품 형식, 제작 의도 등에서 일정한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언뜻 유사해 보이는 이들 초상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얼굴에 난 검버섯이나 천연두 자국, 수염과 눈꺼풀, 눈의 흰자위에 나타난 핏기까지 그려낸 섬세한 묘사 등 인물의 개성을 살린 외적 특징뿐 아니라, 인격적인 면모와 그가 처했던 시대적 상황, 초상화를 그릴 당시의 내면 심리까지 충실히 묘사했음을 보게 된다.
필자는 두 가지 큰 축을 중심으로 인물과 초상화 이야기를 엮어간다. 하나는 역사적 관점의 서술이고 다른 하나는 회화적 관점의 서술이다. 70여 명의 개별 초상화를 면밀히 들여다보면서, 초상화 속 인물의 삶과 그들이 살았던 시대상, 초상의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과의 교유관계, 그린 화가의 이야기와 그림이 그려지고 현재까지 전해진 내력, 그리고 그림 위에 직접 혹은 문헌자료에 간접적으로 남아 있는 인물과 초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꼼꼼히 풀어내고 있다. 이를 통해 비전문 독자들은 보다 쉽고 흥미롭게 역사 속 인물들과 그들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 그리고 그들의 시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은 필자가 서문에서 밝혔듯 40여 년 초상화 연구의 빛나는 결실이기도 하다. 한국 초상화 가운데 걸작들만을 한 자리에 모아 ‘예술성’이라는 엄정한 잣대를 가지고 작품 자체를 충실히 해석?평가했다. 작품 하나하나의 형식과, 얼굴부터 발끝까지의 상세한 표현 기법, 작품간 형식 및 기법의 흐름과 차이점, 그리고 인물이 입고 있는 의복을 통한 복식사적인 고찰 등 개별 작품에 대한 충실한 미술사적 해석이 초상화에 대한 깊고 폭넓은 지식을 요구하는 관련 학자들과 학생들에게도 귀중한 지적 자산이 되어줄 것이다.
한국 초상화에서 ‘형形’과 ‘영影’의 의미
- ‘형’은 그려지는 대상 인물 그 자체, ‘영’은 그려진 초상화
저자는 “초상화란 형形과 영影의 예술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무슨 뜻일까?
‘형’이란 그려지는 대상 인물 그 자체이며, ‘영’이란 그려진 초상화를 말한다. 즉 실체實體와 가상假象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외적 모습(형)은 시시각각 변모하지만, ‘형’의 배후에는 그 사람만이 가진 불변의 본질 즉 정신(신神)이나 마음(심心)이 자리하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정신이나 마음은 외양外樣의 배후가 아니라 하나의 중층구조重層構造로서 형과 서로 연계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화가가 어떤 특정 인물을 그려낼 때 그의 외양인 ‘형’을 올바로 포착해낸다면 자연스럽게 이 ‘형’과 구조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정신이나 마음 같은 내적 요소 역시 화면 위로 끌어올려져 ‘영’으로 비추어진다는 것이다. 이를 초상화론에서는 ‘전신사조’傳神寫照라든가 ‘사심’寫心이란 용어로 표현하곤 하였다. 한국 초상화에서는 이렇듯 ‘형’形에서 이끌어낸 ‘영’影의 표현을 궁극의 목표로 삼았으며, 인물의 모습을 터럭 하나라도 더 닮게 그림으로써 그 정신과 마음까지 오롯이 담아내려 했던 것이다.
‘터럭 하나라도 틀리면 그 사람이 아니다!’
- 한국 초상화의 묘는, 재현의 극에서 오는 뛰어난 표현력
한국 초상화는 왜곡이나 변형을 통한 실제 인물 이상의 회화적 효과도, 특징의 강조를 통한 의도적 과장도 추구하지 않았다. 오로지 실제 인물에 접근하기 위한 사실적 노력만이 극진했다. 이는 천연두 자국이나 기미, 주근깨, 반점 같은 피부상의 특징은 물론, 눈꺼풀의 묘사나 수염 처리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한국 초상화에서 시선은 안면과 동일한 각도로 처리되며 눈의 형상도 실제 모습 그대로를 옮긴 듯 과장되지 않게 묘사된다. 그리하여 초상화를 바라보면 마치 실제 인물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야말로 ‘터럭 한 올이라도 틀리면 그 사람이 아니다’라는 전통적인 초상화의 명제를 화가 자신이 마음 깊숙이 새기고 따랐음을 말해준다. 비록 융통성 없고 딱딱한 감을 주기도 하지만, 어쭙잖은 개성의 폭주는 방지되어 있으며, 때문에 모든 작품이 도달한 수준의 격차는 그다지 크지 않다. 한국 초상화의 묘는 바로 이러한 재현의 극에서 오는 뛰어난 표현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눈썹이 유난히 길어 스스로 미수眉?라 칭했던 허목의 초상(본문 188쪽), 고산 윤선도의 증손으로 조선시대 풍속화의 선구라 불리는 윤두서의 자화상(본문 228쪽), 사대부 화가인 동생 조영석이 유배지로 찾아가 초본을 그렸다는 조영복초상(본문 236쪽), 조선 서체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명필 이광사의 초상(본문 270쪽), 조선후기 예단의 총수이자 김홍도의 스승이었던 강세황의 자화상(본문 286쪽), 초상화가로 최고의 영예를 누렸던 이명기의 걸작 오재순초상(본문 326쪽), 가장 전형적인 사대부상이라 일컬어지는 맑고 고고한 모습의 이채초상(본문 348쪽), 꼿꼿하고 학덕이 높았던 허전초상(본문 372쪽), 망국의 한과 우국지사의 내재된 울분이 감지되는 전우초상(본문 418쪽), 공신상의 시대를 마감하는 오명항초상(본문 507쪽) 등의 안면 묘사는 특히 압권인데, 이를 통해 위에서 말한 ‘재현의 극’을 명확히 살필 수 있다. 때로 눈은 마주치는 듯 섬뜩하게, 피부는 결이 만져질 듯 정세하게 묘사된 얼굴을 보면 인물이 당시 처했던 상황의 일면이나 감정 상태, 인물의 성정마저 고스란히 전해진다.
<책속으로>
조선후기 예단의 영수, 강세황초상과 자화상
강세황의 초상이 특히 주목되는 이유는, 그가 남긴 자화상들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초상화는 왕으로부터 사대부와 여인, 스님 초상까지 많은 수량이 남아 있지만 자화상은 극히 드물다. 그 이유는 스스로가 자신을 ‘그릴 가치가 있는 인물’로 인식하고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동시에 ‘정밀한 사생 능력’까지 갖추고 있어야만 자화상을 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림을 통한 자의식의 발로, 혹은 회화를 통한 감성의 전달은 조선시대 몇몇 화가의 소수 작품 예에서만 발견될 뿐, 근대 이후의 그림에서 보듯 보편적인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스스로에 대한 고민과 자의식, 감성 표현의 결정체로 볼 수 있는 자화상의 제작은 당시로서는 파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뛰어난 묘사력을 갖췄던 직업 화가들의 자화상이 기록에도 거의 전무한 이유는 이러한 데 있다. 앞서 보았던 윤두서나 강세황의 자화상은, 그만큼 귀하다.
뛰어난 그림 실력뿐 아니라 독보적인 서화 감식안을 갖고 있었던 표암 강세황은 당대의 문예계를 주도했던 예단의 영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외모에는 별로 자신이 없었던 듯 스스로 “키가 작고 외모가 보잘것없어서,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은 그 속에 탁월한 지식과 깊은 견해가 있으리라는 것을 모르고 그를 만만히 보고 업신여기는 경우도 있었는데…”라고 말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말했듯 대범한 성격과 높은 식견의 소유자였으며, 김홍도의 스승으로, 당대의 명필로, 또한 다양하고 과감한 회화적 시도와 독보적인 감식안까지 갖춘 가히 당대 문예의 대스승으로 일컬을 수 있다. 그의 자화상에서는 노옹의 단아하면서도 추상같은 기상이 느껴져 자못 고개가 숙여진다.
- (본문 286~297쪽)
자결로 생을 마감한 구한말 우국지사, 황현의 초상
황현 선생은 조선조 말의 우국지사이자 학자로, 51세 때인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매국노를 규탄하는 시와 애국지사를 애도하는 시를 지었으며, 1910년(융희4) 일제의 강압에 의해 국권을 빼앗기자 통분하여 하룻밤에 절명시絶命詩 4편(『매천집』권5)을 짓고 음독, 자결하였다. 황현의 초상은 당시 최고의 초상화가였으며 우국지사의 초상을 많이 남기기도 했던 석지 채용신이 그렸는데, 화가가 참고로 한 황현의 사진도 남아 있어 그 모습을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다. 사진에서는 얼굴이 몸체에 비해 상당히 크고 체구 또한 작은 편인데, 그림에서는 얼굴을 실제보다 작게 그리고 몸체를 상대적으로 크게 그림으로써 당당한 비례감각을 부여했다. 이는 우국지사였던 황현 선생의 삶과 정신을 표현하기에 가장 이상정인 형상으로 표현하고자 한 화가의 의도로 생각된다. 동그란 안경 너머 생각에 잠긴 듯 앞쪽을 정시하는 결연한 시선과 비통함을 참는 듯 살짝 다문 입술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옷깃을 여미고 숙연한 분위기에 젖게 한다.
- (본문 424~429쪽)
책속으로젊은 시절의 연잉군초상과 51세 때의 영조어진
왕의 초상 가운데 젊은 날의 연잉군과 왕위에 오른 영조의 초상을 비교해보는 것은 흥미롭다. 궁중에서 제일 하급직인 무수리 신분의 숙빈최씨淑嬪崔氏 몸에서 태어난 연잉군은, 왕자 시절 궁중의 암투를 누구보다도 뼈아프게 체감하면서 성장했다. 초상화가 그려질 당시 연잉군은 세자 신분이 아니었으며, 자신을 지지하는 노론세력과 경종을 지지하는 소론세력의 극심한 대결 속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초상화에 나타난 연잉군의 모습은 눈꼬리가 올라가고 길쭉한 얼굴인데, 젊은 나이 임에도 불구하고 패기는 보이지 않고, 신중하고 온유한 표정이지만 무언가 울적한 기색이 감지된다. 이어 왕위에 오른 후 영조의 모습을 살펴보자. 조선왕조 역대 왕 중 가장 재위기간이 길고 각 방면에 재흥의 기틀을 마련한 영주英主이기도 했던 영조의 모습은 홍기 가득한 정력적인 안색, 봉안鳳眼에다가 높은 산근山根 등 홀쭉한 몸체는 젊은 시절의 용모와 닮았지만, 노년에 접어든 영조의 모습에서는 더 이상 왕자 시절의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표정을 찾기 어렵다. 그의 외모는 이제 자신만만하고 권위적인 인상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 (본문 76~89쪽)
고뇌로 충만한 천재의 내면세계, 김시습초상
천재적 문장가이자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은 김시습은 나이 스물한 살에,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에 분개하여 책을 태워버리고 승려가 되었다. 출가와 광인 행색, 전국 각지를 떠도는 방랑 생활을 반복했던 그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때로 분노와 역겨움으로 세상을 야유했고, 표리부동한 세상 인심을 비웃으며 자신을 학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50세 이후 그의 모습은 속박의 허물을 벗고 자연으로 돌아간 고독한 지식인의 모습이 더욱 강했으며, 특히 율곡 이이가 『김시습전』을 지은 이후 그의 유학자로서의 면모가 재평가되면서, 17세기 이후에는 그를 숭배하는 문인들도 많아졌다. ‘네 모습은 지극히 미약하며 네 말은 분별이 없으니, 구렁 속에 빠져 마땅하다’(爾形至? 爾言至大? 宜爾置之丘壑之中). 매월당 김시습은 생전에 손수 그린 자화상에, 자신의 삶 자체를 가차 없이 질타하는 위와 같은 찬문을 남겨놓았다. 아쉽게도 손수 그린 자화상은 남아 있지 않지만, 현재 부여 무량사에 전하는 초상 속 그의 초연한 모습 뒤에서, 그가 자찬문에서 토로했던 바, 고뇌로 충만한 비장한 내면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 (본문 160~167쪽)
기복 심한 삶을 살았던 유학계의 거두, 송시열초상
정치적으로 기복이 심한 삶을 살았던 우암 송시열은 일생을 주자학 연구에 몰두한 거유巨儒로 이이李珥의 학통을 계승,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주류를 이루었으며, 예론에도 밝았다. 성격이 과격하여 많은 정적이 있었지만, 뛰어난 학식과 꼿꼿한 인품으로 그의 문하에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따라서 사후死後 그를 추모하여 받드는 수많은 사우祠宇가 건립되었는데, 그중 영정을 봉안했던 영당 및 사우만 해도 적지 않은 수에 이른다. 송시열은 조선왕조실록에 3,000번이나 그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하나, 실제 벼슬에 있었던 기간은 다 합해 8년여에 불과할 정도였다. 당파간 정쟁의 한가운데서 조선 유학사의 한 획을 그었으나, 결국 사약을 받아 생을 마감했다. 안광이 매우 강하고 풍채가 당당하며 강렬한 카리스마를 지녔던 송시열의 초상은, 유학계의 거두답게 뛰어난 작품들이 많이 전해온다. 인물 자체가 워낙 뛰어난 학식과 인품, 영향력을 지녔던 모델이었던 데다, 그의 후손과 따르는 유림들의 세력이 대단했기 때문에 초상화를 그릴 때도 탁월한 기량을 지닌 최고의 화원들을 통해 최선의 작업을 도모했던 결과이다.
- (본문 190~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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